5. 캐츠비가 이야기하는 인류의 술문화
섞을 것인가, 남길 것인가

블렌디드 위스키의 시대와 싱글몰트의 잠행
19세기 중반 이후, 위스키는 더 이상 변방의 술이 아니었다.
합법, 유통, 숙성, 브랜드—
이 모든 요소가 결합되며 위스키는 산업의 문턱을 넘는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위스키 역사상 가장 중요한 갈림길이 열린다.
블렌디드 vs 싱글몰트
1. 산업화의 결정타: 코페이 스틸의 등장
1-1. 연속식 증류, 술의 성격을 바꾸다
1830년대, 아일랜드 출신 아이니어스 코페이(Aeneas Coffey) 는
연속식 증류기(컬럼 스틸)를 완성한다.
이 기술의 의미는 단순하다.
빠르다
싸다
균일하다
도수가 높고 개성이 적다
이로써 그레인 위스키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그레인 위스키 자체는 매력이 없었지만,
섞였을 때 모든 것을 바꿨다.
2. 블렌디드 위스키: 대중의 술이 되다
2-1. 왜 섞었는가
싱글몰트는:
생산량이 적고
맛의 편차가 크며
가격이 높았다
반면 블렌디드는:
맛이 일정하고
마시기 쉽고
대량 생산 가능
여기에 결정적 사건이 겹친다.

3. 프랑스 포도밭의 붕괴와 위스키의 기회
19세기 후반, 필록세라(Phylloxera) 라는 해충이 프랑스 전역의 포도밭을 초토화시킨다.
결과는 명확했다.
브랜디·와인 공급 붕괴
유럽 상류층의 술 공백
대체 주류 필요
그 자리를 채운 것이 바로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였다.
조니 워커, 시바스 리갈, 듀어스—
이 이름들이 이 시기에 세계로 뻗어나간다.

4. 싱글몰트의 후퇴: 살아남기 위한 침묵, 이 시기, 싱글몰트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전면에 나설 필요가 없었다.
대부분 블렌드의 원액으로 사용
증류소 이름은 숨겨짐
“몰트의 개성”은 내부 자산이 됨
이때 스코틀랜드에는 수많은 증류소가 생기지만,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5. 캐츠비의 관점: 블렌디드는 타협이 아니라 전략이다
종종 이렇게 말한다.
“블렌디드는 질이 낮다.”
이건 역사적으로 틀린 말이다.
블렌디드는:
불안정한 몰트를 안정화했고
위스키를 세계로 확산시켰으며
증류소들을 먹여 살렸다
만약 블렌디드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싱글몰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6. 그러나 균열은 이미 시작되었다
20세기로 접어들며,
위스키는 너무 안정적이 되어간다.
어디서 마셔도 비슷한 맛
브랜드는 커졌지만 이야기성은 약화
산업은 커졌지만 ‘땅의 목소리’는 희미해짐
그리고 이때, 아주 조용히 질문이 떠오른다.
“이 술은, 어디에서 왔는가?”
7. 폭풍 전야: 금주법과 몰트의 잠복
이 질문에 답할 시간도 없이,
미국에서는 금주법(Prohibition) 이 시작되고
세계 위스키 산업은 한 번 더 휘청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혼란은 훗날 싱글몰트의 부활을 준비하는
긴 숙성 기간이 된다.